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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주도성장, 길을 묻다 334750

한국경제가 '지도에 없는 길'로 들어서고 있다. 문재인정부가 새로운 경제패러다임으로 야심차게 내건 소득주도성장은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이고, 외국의 성공사례도 찾기 힘들다.

우리 경제는 저성장 고착화, 양극화 심화라는 복합 위기에 처한 지 오래다. 규모면에서 아직 선진국들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는데도 경제체력은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2002년 이후 지속되는 초저출산 현상에다, 고령화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분배마저 적신호가 켜졌다. 지니계수, 소득 5분위 배율 등 대표적인 소득분배지표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하위권이고 소득 불평등도도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경제가 성장해도 대기업, 수출기업에 그 과실이 집중되고 가계나 내수․중소기업들에 대한 연관효과나 혜택은 미미한 상태다. 이는 기업 간 격차, 가계·기업 간 불균형, 내수·수출 불균형으로 이어지고 급기야 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지금까지의 성장방식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책기조의 변혁이  불가피하고 이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다면 낯선 길이라도 가겠다는 것이 문재인정부의 현실인식이다.    

저성장과 양극화라는 두 함정에서 벗어나는 해법으로 문재인 정부는 '사람 중심 지속성장 경제'를 내걸었다. 경제성장은 소득주도로, 경제 체질은 일자리 위주로 전환해 소득주도성장과 일자리경제, 공정경제, 혁신성장을 통해 성장과 분배, 일자리와 소득이 선순환 되는 구조를 구축해보겠다는 것이 문재인 정부 향후 5년의 경제정책 밑그림이다. 이름 하여 'J노믹스'(문재인의 경제학)다.   

소득주도 성장을 위해 가장 먼저 내세운 것이 가계의 실질 가처분 소득 증대조치다. 최저임금 1만원 달성과 공적임대주택 연 17만호 공급, 월 10만원 아동수당 신설과 노인 기초연금 인상 등이 그것이다.

다음으로 예산과 세제, 투자 인센티브 등을 모두 일자리에 초점을 맞춰 재설계하고, '부자증세'와 함께 경상성장률 증가 속도 이상으로 재정지출을 확대해 양극화 해소 등 분배개선에 사용하는 등 정부가 시장실패 보완에 적극 나선다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생산성과 기업이윤에 비해 임금과 가계소득이 정체되고 저성장이 심화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득주도성장 카드는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다.

소득주도 성장론은 국제노동기구(ILO) 보고서의 '임금주도 성장론'에 비롯됐다고 한다. 자영업자가 많고 재분배가 미약한 한국에 와서 소득주도 성장론으로 표현이 바뀌었다. 

임금을 올려 소비와 경기가 살아나면 기업투자 증대로 성장이 촉진되고 신기술 도입으로 생산성도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주류경제학계의 반론은 거세다.    

임금은 가계에는 소득이지만 기업에는 비용이다. 임금을 올리면 생산비용이 늘어나 제품가격이 올라가고 가격경쟁력에서 수입품에 밀려 생산업체가 종업원을 줄이거나 싼 노동력을 찾아 외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겨갈 수 있다. 이 경우 일자리는 되레 줄어든다.

가계소득증대가 곧 소비증가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우리의 내수부진은 소득의 많고 적음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산층 가계의 소비여력이 떨어지는 것은 은퇴 이후 노후생활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호주머니를 열지 않는 요인도 크다. 더구나 가계부채가 1400조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민간의 소비 여력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설령 소비가 늘어난다 해도 이것이 곧 생산 및 고용증대로 이어진다는 보장 또한 없다. 생산력은 자본축적량, 노동생산성, 기술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생산성을 높이지 않으면서 임금이 생산성을 웃돌 경우 생산이 증대될 수 없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상공인과 영세 중소기업들이 고용을 줄이는 부작용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인상된 최저임금의 일부를 보전해 주겠다는 것은 소득주도성장의 현실적 한계를 스스로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소득분배 강화가 성장 촉진으로 이어지려면 생산성증대를 통해 분배할 '파이'를 계속 키울 수 있어야한다. 소득주도성장은 지속 가능성이 중요하다. 소득분배강화로 임금이 높아져 경쟁력이 떨어지면 성장이 지체되고 세수는 줄어든다.

재정을 투입해 생산성이 미치지 못한 일자리를 인위적으로 만들 경우 부채의존형 성장이 되기 십상이다. 소득은 성장의 결과이지 성장의 원천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11조원의 추경으로 공공, 민간에 10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면 0.2%의 경제성장 효과가 나타나 올해 3%대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다고 공언하고 있다.

나랏돈을 '마중물' 삼아 일자리와 소득을 늘려 소비증가-투자증가-일자리창출-성장의 선순환을 이룬다지만 이 고리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연결이 안 되면 마중물만 낭비하게 된다.

우리의 재정 건전성이 양호하다지만 결코 안심할 처지는 못 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는 40%로 상대적으로 낮은 게 사실이지만 공공기관 부채와 연금충당금까지 합치면 GDP와 맞먹는다. 지난 10년 연속 재정적자를 기록해 나랏빚 증가 속도 또한 가파르다.  박근혜정부의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한 때 '지도에 없는 길도 가보겠다'고 호기를 부렸었다.  일본총리가 임금 인상을 독려하고 임금과 소비 증가를 통한 경제의 선순환을 강조한 사례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렇다 할 효과는 듣지 못했다. 노동소득 증대가 현실적으로 생산증대보다 가격상승이나 해외소비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투자와 고용의 주역인 기업이 흔들리면 소득주도 성장의 연결고리가 끊어져 일자리·사람 중심의 경제정책도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나랏돈을 마중물로 한 일자리창출과 소득증대는  '구원투수'일 뿐 성장의 핵심엔진은 못 된다. 구조개혁과 기술혁신, 생산성 향상 등 공급 쪽 의 뒷받침이 없으면 소득주도성장은 '반쪽짜리 성장모델'로 전락할 수 있다.   

일자리 창출의 주체가 기업이란 사실을 외면 한 채 한국경제의 난제를 풀 수는 없다. 현재 10대 그룹을 뺀 나머지 기업들은 모두 마이너스 성장상태다. 10대그룹 안에서도 성장 동력이 특정 기업이나 업종 쪽으로 쏠림이 심해 경제체질은 전반적으로 취약하다.

최저임금인상, 통상임금소송,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부담이 가중되는 데다 중국의 사드보복, 한미FTA(자유무역협정)폐기 위협, '북핵 리스크' 급부상 등 대외환경도 설상가상이다.   이럴 때 일수록 기업들의 기(氣)를 살리고 구조개혁과 규제혁파, '혁신성장'을 위한 정교한 청사진으로 민간부문을 보듬고 뒤받쳐 주는 정책적 노력이 절실하다.

곳곳에 잠재된 4차 산업혁명의 추동력을 체계적으로 끌어 모으고, 이에 맞춰 기존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 분배와 성장이 윈-윈하는 새로운 성장패러다임으로 보완, 격상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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