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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한국경제가 탄생하지 않는 이유 334191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비아냥거림이 있다. 만일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되었다면 지금도 원숭이가 진화되어 인간이 되고 있어야 하는 데 최근 수천 년 동안 그런 일이 없었다. 그래서 진화론에는 문제가 있다.

마찬가지로 경제발전 이론에 따르면 한국과 같이 지속적으로 발전해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서야 하는 데, 왜 한국처럼 발전한 후속국은 없을까? 여러 가지 분석이 있다. 이를 대내적인 것과 대외적인 것으로 나누자면 다음과 같다.

한국적인 특성
- 교육열이나 국민 교육의 수준이 60년대 초 이미 중진국이상의 수준이었다.
- 수출드라이브정책에 반대할 만한 세력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 권력자 재산의 해외도피가 없었다.
- 자원이 너무 빈약해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 일제의 수탈과 전쟁으로 산업이 완전 파괴되어 있었다.

시대적 세계 경제 상황
- 한국이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걸 당시에는 수출로 경제발전하는 나라가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 소수국가였고, 나머지 대다수는 중남미 등의 국가는 내수중심의 경제였다.
- 공산권과 자본주의권이 나뉘어져 서로 경계하며 자기 범위 내에서만 보호하며 살았다.
- 선진국들의 수입할 만한 경제적 여력들이 충분히 있었고 불균형적 교역을 용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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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런데 요즘은 들어 많은 나라의 공무원들이 한국에 와서 '한강의 기적'을 배우고 가지만, 여전히 제2의 한국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건 내부적인 노력이외의 요소들도 많이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시대적인 상황도 많이 작용하는 듯하다. 그리고 한국은 다른 나라들에 비하여 운이 좋았다는 평가도 많이 받는다.


1) 수출드라이브 정책의 추진
1960년대와 1970년대 가난한 개발도상국들은 자국의 경제를 일으켜 세우고자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런데 대부분의 국가들의 경제정책은 '수입대체 산업 육성'이었지, 대외 개방을 통한 수출드라이브 정책은 아니었다.

그 당시 '수입대체 산업 육성론자'들의 주된 경제이론은 '종속이론'이었다. 종속이론은 이미 세계 정치. 경제의 중심부에 있는 선진국들이 나중에 자본주의에 편입된 국가들, 다시 말하면 과거 선진국들의 착취대상 식민지였던 국가들이 구조적으로 종속되어 지속적으로 착취당하게 된다는 이론이었다.

중남미에서 나온 이론이지만 한국에서도 꽤나 유행했던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싱가포르, 홍콩, 타이완과 남미의 칠레만은 '수입대체 산업 육성정책'이 아닌 대외 개방을 통한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취한다. 결과적으로 아시아의 4 마리용은 빠른 시일 내 고도성장을 이루었고, 칠레는 남미에서 가장 부유한 시스템을 가진 나라가 되었다. 이에 반하여 수입대체정책을 추진한 나라중 제대로 된 성장을 이룬 나라는 없다. 왜 그럴까?

수출 지향적 산업화 정책이 내수 산업 발전을 통한 수입대체산업의 발전에 비하여 월등한 이유로는 우선 시장이 규모가 협소한 국내로 제약되지 않고 인구도 많고 더 부유한 온 세계를 상대로 물건을 팔 수 있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를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수출을 통하여 획득한 달러. 엔화 등 외화는 자본재, 원자재, 중간 생산재 및 기술의 원활한 도입을 추진할 수 있게 하여 지속적인 성장의 바탕을 만들어준다.

특히 유치산업 보호정책을 취하면서 제한적 개방을 하며 내수시장보다 훨씬 더 큰 해외시장에 접근할 수 있게 됨은 물론이고, 내수시장에서 해외 선진기업과 제한적이나마 경쟁을 독려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국 내에서 만들거나 찾기 어려운 생산요소, 특히 선진 기술과 자본을 유치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한국은 시장개방이 자국의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좋은 참고 사례가 될 수 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오히려  보호무역의 필요성을 입증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한국은 경제성장 전략으로 시장을 외부에 개방했지만, 무조건 전부 개방한 자유무역을 한 건 아니었다.

반면에 2차 대전 후 독립하여 수입대체 산업화를 통한 자급자족적 경제를 추구한 추진한 개도국은 정치적으로 사회주의, 민중주의(populism) 등과 맞물렸다. 일부 극단적인 경우에는 마오쩌둥의 중국이나 김일성의 북한처럼 세계경제로부터 완전히 이탈하기도 하였다. 결과적으로 수입대체산업 정책을 추구한 거의 모든 개발도상국에서는 성장을 추진할 자금력의 부족으로 실질적인 성공을 이루지 못하였다.

2) 자유. 공산진영의 대립
자유-공산진영의 대립은 한국의 경제발전에 두 가지 유리한 점을 제공하였다. 가) 자유진영의 경제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나) 해외시장에서 경쟁자의 숫자를 제한을 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가) 자유진영의 경제지원
한국이 경제개발을 하던 60-70년대와 그 이후에 경제개발을 하는 다른 개도국들은 분명 다른 조건아래에 있다. 그 중에서도 한국은 냉전이라는 특수한 환경 때문에  경제개발에 유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점도 있다. 1980년대 초까지는 미국은 다른 모든 국가를 압도하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스스로는 시장을 개방하면서 개도국의 제품을 받아들이는 수출드라이브 산업정책을 받아들이는 비대칭적 관계를 용인하였다.

그 이유는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이 대립하는 냉전이 진행되고, 사회주의에 우호적인 '제3세계주의'가 팽배하는 속에서 자유진영에 속한  구미선진국은 개도국의 경제적 발전을 통한 공생을 모색하면서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비대칭적 관계를 전략적으로 용인하였다.

대부분의 개도국이 선진국의 자본주의에 종속되는 것을 우려하여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편입되기를 꺼려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개도국이 자국의 시장을 선진국에 개방하지는 않아도 수출을 통해 반만이라도 편입되려고 하는 수출지향적인 산업정책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진국은 기술이전에도 매우 관대하였다. 특히 한국은 자유공산 진영의 직접적인 대립지역으로 특수성에서 미국은 한국에 상당한 경제 원조를 하였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이후 냉전은 사라지고 과거 공산주의 국가들이 대부분 시장주의 경제로 탈바꿈하였다. 이제는 어느 나라도 정치체제가 다르다고 하여 무역을 금하지 않는다.

나) 해외시장에서 경쟁자 제한
1980년대 후반 공산진영이 무너지면서 거의 모든 나라들이 시장경제로 진입하였다. 그리고 모든 나라는 모든 나라에 대하여 이념과 상관없이 무역을 할 수있다. 이는 한국의 경제개발시기보다 훨씬 더 많은 국가들이 개방경제와 국제간의 무역에 바탕을 둔 경제개발을 추진하고 있어, 개도국간의 경쟁이 매우 치열해졌음을 의미한다.

냉전 시대에 소비에트 소련체제의 영향 아래 있던 공산권 국가들과,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지에서 사회주의 공산이념을 추구하던 국가들이 거의 대부분 시장경제로 돌아서서 자본주의적 산업발전을 추진하고 있다. 더불어 이들 국가들을 포함한 개도국의 외국 자본과 기술을 자국으로 유치하려는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공산권은 공산권끼리, 자본주의권은 자본주의 국가끼리 협조를 하며 제한된 경쟁을 하던 시대와는 달리 이제는 온 세계가의 시장경제라는 단일화된 링 위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형국이 된 셈이다. 그 중에는 중국이라는 초거대 국가마저 공산권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전환하고 세계 경제에 참여하고 있다.

중국은 거대한 잠재적 내수시장을 미끼로 하여 선진국의 기업과 자본을 유치하는 면에서 여타의 모든 국가들을 압도하고 있다. 더불어 15억 명에 달하는 거대한 인구를 배경으로 한 규모의 경제로 노동집약적인 제조업에서도 다른 개도국에 비하여 경쟁력이 매우 높다.

이러한 중국의 거대함 때문에 다른 개도국들이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노동집약적 제조업에 진입하기도 쉽지 않게 되었다. 많은 개도국들은 선진국의 자본과 기술을 얻을 기회와 시장을 중국에 선점당한 상태에서 산업화를 추구하게 되었다.

아울러 냉전의 종식과 함께 미국이나 구소련에서 원조 받는 일을 발전도상국들이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구소련과 중국의 시장경제로의 전환으로 체제 경쟁이 사라졌다. 그리고 2차 대전 이후 한동안 세계를 지배하던 미국이나 구소련과 같이 경제적으로 절대적인 우위를 가진 국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선진국들이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특정 개도국을 지원하는 일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과거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이 한국이나 타이완을 지원했던 것처럼 관대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 절대적인 숫자나 규모는 많이 줄어들었다.


3) 선진국들의 관용성이 좁아짐
대공황과 2차 대전을 겪으면서 위기에 빠졌던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는 2차 세계 대전이 끝나면서 정치적으로는 체제안정과 경제적으로는 고도성장을 일궈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선진국들의 경제 성장률은 떨어졌지만 호황은 계속되었다. 이는 미국이 전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쥐면서 세계 경제 질서가 안정되면서 오랜 기간 경제성장을 지속되었다.

그렇지만 공산권이 붕괴되고 수많은 나라들이 시장경제 체제로 진입하며 수출 지향적 국가로 전환하면서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너무 많은 나라들이 자국의 시장은 보호하면서 해외 시장진출을 꾀하면서 선진국들의 생산시스템 붕괴에 대한 우려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후로 선진국은 자유주의적인 관점 하에서 보아온 비교우위를 무시하는 개도국의 산업정책을 달 가와 하지 않는다.

한국은 국내시장 보호를 통하여 경제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불가능하다. 자유무역을 지향하며 만들어진 WTO(국제무역기구)는 국가의 간섭을 최소화하며 국가의 불공정거래행위 조장을 막아 자유로운 무역의 증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WTO는 바로 이런 이유로 각국의 무역장벽 철폐를 지향하고 이를 어기는 행위를 감시하고 있다. 한국이 실행했던 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을 통해 수출을 지향하거나 거대 규모로 육성할 수가 없게 되었다. 개도국들이 WTO의 규제 때문에 의하여 보호주의적 산업정책을 취할 수 없게 되어 한국처럼 비약적인 발전으로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산업화를 이루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처럼 각 국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대적인 상황이 제2의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내기 어려운 조건이 되고 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여러 모로 운이 좋은 국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근세사에 겪은 고통이 없었더라면 한국은 이미 미국을 앞서갔을 수도 있다. 이런저런 상황을 고려하면 이 정도의 발전을 이룬 것은 참으로 불행 중 다행이다.

실제로 장사하다보면
과거의 한국을 기억하고 현재의 한국에 대하여 감탄을 표시하는 바이어들을 많이 만난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네 나라의 정치인들을 불만스러워한다. 우리 이전세대들이 이루어낸 그 놀라운 성과가 우리 세대가 장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한국에 대한 믿음을 키워줬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은 밥도 못 먹는 후진국이 아니다. 심지어는 미국이나 유럽의 바이어들도 굉장히 역동적이 신제품이 빨리 많이 나오는 데 놀라움을 표시한다. 이제는 어느 한국인도 일본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전에는 서양 사람이 동양인을 보면 Are you Chinese or Japanese? (당신은 중국 사람이나 일본사람입니까?)라고 물어보고 아니라고 하면 고개를 꺄우뚱하고 말았지만, 이제는 Oh Korean! (아, 한국인이군요!)라고 할 정도는 되었다. 해외에 나가면 다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는 데, 그게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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